-
목차
1. 서론 │ 겨울 거리에서 들리던 연탄 불빛의 기억
추운 겨울 거리, 옷깃을 여민 사람들 사이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던 풍경.
그 옆엔 언제나 노란 고구마가 익어가며 달콤한 냄새를 흘리고 있었다. “군고구마요! 따끈따끈해요~”
이 익숙한 외침은 한때 겨울의 정취 자체였다.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거리에서는 군고구마 장수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전기 오븐, 편의점 간식, 온라인 배달 음식이 보편화되며 겨울 간식 문화와 함께 이 직업도 조용히 사라졌다. 이 글에서는 군고구마 장수라는 직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왜 잊혀졌으며, 우리에게 남긴 문화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되짚어본다.
2. 군고구마 장수의 등장과 거리 상권
2.1 자립 생계형 직업의 대표
군고구마 장수는 특정 조직이나 체계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이 연탄 난로, 고구마, 수레만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자립형 직업이었다.
- 철제 드럼통을 개조한 화덕
- 연탄 불 위에서 천천히 구워지는 고구마
- 겨울철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중심의 이동 판매
이 단순한 구조는 초기 자본이 거의 필요 없고, 기술 숙련도도 낮아 노년층, 실직자, 여성 가장 등의 생계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2.2 도시의 ‘계절 장사꾼’ 문화
군고구마 장수는 계절에 따라 등장하는 전형적인 거리 상인이었다.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시장 골목, 학교 앞, 지하철 입구,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간이 수레나 트럭, 또는 리어카로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군고구마 한 봉지는 도시인의 피로를 덜고, 손을 녹이며, 한 끼 식사로도 기능했던 겨울 거리의 상징이었다.
3. 노동의 현실 – 뜨거운 불과 차가운 거리 사이
3.1 연탄 화덕과 유해 환경
군고구마 장수는 연탄을 다루는 노동자로서 항상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있었다.
- 연탄 가스와 매연
- 겨울철 손발 동상의 위험
- 수시로 고구마를 뒤집고 확인하며 서 있어야 하는 반복 노동
특히 고구마가 타지 않게 굽는 기술은 단순해 보이지만 화력 조절, 시간 감각, 감각적인 판단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3.2 불안정한 소득과 단속 리스크
대부분의 군고구마 장수는 무허가 노점 형태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구청 단속, 상권 민원, 거리 이동 제한 등에 자주 노출되었고, 상당수는 안정된 수입 없이 하루 매출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만의 ‘단골 구역’을 형성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계절마다 반가운 얼굴이 되곤 했다.
4. 사라진 이유 – 도시 공간과 식문화의 변화
4.1 자본 중심 도시정비와 노점 철거
2000년대 이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거리 미관 정비 안전 문제 해결 노점상 정리 정책 강화 등으로 도시의 공공공간에서 자영 노점의 설 자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군고구마 장수 역시 단속 대상이 되었고, ‘정식 영업 허가가 없는 생계형 판매자’로 분류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4.2 편의점 간식과 전자기기의 대체
군고구마는 이제 편의점에서 전자렌지로 데우거나, 에어프라이어로 굽는 간식이 되었다. 유통 채널의 다양화, 빠른 소비를 원하는 생활 리듬, 비대면 쇼핑 문화의 확산 은 길거리 음식에 대한 수요 자체를 줄였고, 군고구마 장수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과거의 간식, 향수의 이미지’로만 남게 되었다.
5. 군고구마 장수가 남긴 문화적 의미
5.1 거리에서 만들어낸 계절의 정서
군고구마는 단순한 먹거리 이상으로 겨울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 학교 끝나고 손에 쥐어주던 종이봉투
- 연기 사이로 눈을 비비며 기다리던 줄
- 주머니 속 500원짜리 한 개로 살 수 있었던 따뜻한 위로
군고구마 장수는 거리의 감성을 연출한 계절의 조율자였다.
5.2 비공식적 경제활동의 생계안전망
또한 군고구마 장수는 노년 빈곤층, 실직자, 사회적 약자들이 비교적 손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일자리였다. 그들은 ‘노점상’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했지만, 실제로는 한 도시의 생계 안전망 중 하나로 기능했던 존재였다. 이 직업의 소멸은 ‘일자리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도 도시가 잃은 중요한 하나의 축이었다.
6. 결론 │ 연탄 화덕의 불빛, 거리의 온기를 품다
군고구마 장수는 단지 고구마를 파는 상인이 아니라, 한겨울 거리에서 사람들의 체온을 되살리던 기억의 연출자였다. 도시가 정리되고, 기술이 편리해지고, 간식마저 클릭 한 번이면 도착하는 시대에, 그들은 천천히, 조용히 사라졌지만 그 연기 속에는 계절의 풍경과 사람의 마음, 노동의 따뜻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기억하자.
한때 겨울은 연탄 위에 노랗게 익어가던 고구마의 냄새로 시작되었다는 것을.'잊혀진 직업 사전 – 사라진 일자리의 문화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유소 안내직 – 잊혀진 직업과 차량 문화사 (0) 2025.05.24 인력거꾼 – 사라진 일자리 속의 도시 교통 (0) 2025.05.23 LP 수선공 – 아날로그의 마지막 잊혀진 직업 (0) 2025.05.21 공중전화 관리인의 잊혀진 직업과 통신 인프라 (0) 2025.05.20 표검표원의 사라진 일자리 – 기차 여행의 변천 (0) 2025.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