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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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24.

    by. 월천공방

    목차

      1. 서론 │ “어서 오십시오, 주유 도와드리겠습니다”

       

      한때 주유소에 들어서면 밝은 유니폼을 입은 안내직 직원이 차량 앞에 다가와 웃으며 창문을 두드렸다. “휘발유 가득이요?”
      이들은 단순히 기름을 넣는 사람을 넘어 고객 응대, 차량 정리, 안전 관리, 브랜드 이미지의 최전선에 선 노동자였다. 하지만 오늘날,
      주유소는 점점 ‘무인화’되고 있으며 대형 도심지를 중심으로 셀프주유소가 주류가 되었다. 이와 함께 ‘주유소 안내직’이라는 직업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주유소 안내직의 등장과 역할, 자동차 문화 속에서의 상징성, 그리고 직업 소멸의 배경과 문화사적 의미를 함께 살펴본다. 

       

      2. 주유소 안내직의 탄생과 확산

      2.1 대중교통에서 자가운전 시대로의 전환

      1960~1980년대, 한국 사회는 자가용 보급률이 급격히 증가한 시기였다. 국산 자동차가 생산되기 시작하고, 도시 외곽도로가 정비 면서 개인 차량 운전자의 수요가 폭증했다. 이에 따라 전국 주요 도로와 도심 곳곳에는 주유소가 설립되었고, 주유와 안전 점검, 도로 안내 등을 도와줄 전담 인력이 필요해졌다. 이때 등장한 직업군이 바로 주유소 안내직이었다.

      2.2 ‘서비스’와 ‘속도’를 담당한 현장 노동자

      주유소 안내직은 단지 주유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차량 진입 유도
      • 주유 종류 확인 및 주유
      • 엔진오일·타이어 등 간단 점검
      • 주유 후 유리창 청소, 영수증 발급
      • 교통 흐름 조절 및 안전 확인

      이 모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친절한 응대로 수행했다.

       

      이들은 ‘주유소의 얼굴이자 브랜드’였고, 운전자에게는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가장 친절한 서비스 제공자 중 하나였다.

       

      3. 안내직의 하루 – 기름 냄새 속 노동의 풍경

      3.1 반복되지만 긴장감 넘치는 작업

      주유소 안내직의 일상은 단순해 보이지만 고도로 훈련된 리듬과 주의력이 요구되는 업무였다. 차량 수십 대가 동시에 진입해도 혼선 없이 정리하고, 운전자의 요구를 파악해 정확한 유종을 선택하고, 차량 종류와 주유구 위치에 따라 주유 동선을 맞춰야 했다. 또한 폭염, 강풍, 눈보라, 미세먼지 속에서도 야외에서 근무해야 했고, 기름 증기, 매연, 화재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었다.

      3.2 감정노동과 고객 응대의 교차점

      이들은 서비스직이자 기술직이었으며, 동시에 감정노동자였다. 고속도로에서 예민해진 운전자의 불만, 대기 시간으로 인한 짜증, ‘셀프주유’보다 느리다는 불평 속에서도 항상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웃어야 했다. 그러나 업무 속도, 정직함, 친절도는 그들의 성과 평가 기준이었으며, 많은 안내직 직원들은 이를 생활의 일상으로 내면화하고 있었다.

       

      4. 자동화 시대와 직업의 퇴장

      4.1 셀프주유소의 확산과 인력 감축

      2000년대 중반 이후 인건비 상승, 고정비용 절감, 효율성 강조의 흐름 속에서 셀프주유소가 빠르게 증가했다. 셀프기계는 주유를 자동화했고, 결제를 무인으로 처리하며, 안전센서와 CCTV로 위험 요소까지 감시했다. 이로써 주유소 안내직의 실질적 업무는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었고, 기존의 ‘전담 안내직’은 대부분 해고되거나, 알바 형태로 전환되었다.

      4.2 대형 프랜차이즈화와 서비스 축소

      과거에는 GS칼텍스, 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 등 브랜드별로 서비스 품질과 안내직의 친절도 경쟁이 활발했지만, 현재는 가격과 위치 중심의 경쟁으로 변했고, 주유소는 더 이상 ‘서비스 공간’이 아닌 ‘빠른 연료 보충소’로 기능 축소되었다. 이 변화 속에서 안내직이라는 직업군 자체가 기업 전략에서 제외되었다.

       

      5. 주유소 안내직이 남긴 문화사적 의미

      5.1 자동차 문화 속의 인간적 접점

      자동차는 기계지만, 그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주유소 안내직은 차량을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경험의 공간’으로 만드는 연결자였다. 부모님과의 시골 여행 중, 밤늦게 지친 퇴근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안내직의 미소는 그 순간의 피로와 긴장을 덜어주는 작은 위로였다.

      5.2 무인화 사회 속 ‘사라진 환대의 노동’

      우리는 이제 무인계산대, 키오스크, 온라인 주문과 같은 비대면 시스템에 익숙해졌지만, 그만큼 ‘누군가 나를 맞이하고 도와주는 체험’은 사라졌다. 주유소 안내직의 소멸은 단지 하나의 직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술의 효율성 뒤에 가려진 인간 중심 서비스의 소멸을 뜻한다.

       

      주유소 안내직 – 잊혀진 직업과 차량 문화사

      6. 결론 │ 주유소의 미소, 그들이 남긴 문화

      주유소 안내직은 기름을 넣어주는 사람을 넘어서 자동차 문화의 얼굴이자, 도로 위의 접객인이었다. 그들의 존재는 단지 업무가 아니라 차량 중심 사회에서 인간적 온기를 더해주는 환대의 상징이었다. 기술은 더 빨라졌고, 시스템은 더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가득 넣어드릴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 한마디가 전해주던 한 시대의 정성과 직업적 진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