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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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22.

    by. 월천공방

    목차

       

      1. 서론 │ 거리 위 기술자, 한 시대를 지탱하던 손의 기억

       

      과거의 도시에는 다양한 소리들이 존재했다. 복작이는 시장의 북소리, 뻥튀기 장수의 뻥 소리, 그리고 들려오는 철컥철컥 숫돌의 마찰음. 그 소리는 길거리에서 가위나 칼을 갈던 수리꾼들의 손끝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점포도 없고 간판도 없었지만, 누구보다 정교한 손기술로 생계를 유지하며, 당대 서민들의 생활 도구를 되살려냈다.

      “가위 간다, 칼 간다—”
      이 한 마디 외침이 울려 퍼질 때, 주부는 부엌에서 닳은 가위를 꺼내들었고, 양장점 주인은 고급 재단가위를 맡기기 위해 뛰어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가위 수리꾼이라는 직업은 우리 곁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글은 사라진 직업이자, 잊힌 기술로 남은 '가위 수리꾼'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이 어떻게 도시의 삶을 지탱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품고 있었는지를 구체적이고 서술적인 방식으로 되짚어본다.

       

      2. 가위 수리꾼의 정체 – 이동하는 기술자, 골목의 수공 장인

      2.1 ‘가위 수리꾼’이란 무엇인가?

      가위 수리꾼은 날붙이 전문 연마기술자였다. 그들이 다룬 것은 단순한 가위뿐만이 아니었다.

      • 가정용 가위
      • 재단용 고급 가위
      • 요리용 식칼
      • 미용가위
      • 낫, 대패, 가위형 철도구
      • 유리병, 못, 드라이버 등 기타 생활 도구

      그들은 자전거나 손수레에 연마기를 싣고, 시장에서 동네 골목, 공방, 이발소, 학교, 병원까지 순회하며 즉석에서 날을 세우고, 도구를 복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물건을 판매하지 않았다. 대신 기능을 복구하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기술로 생계를 이어간 사람들이었다.

      2.2 고정된 주소가 없는 이동형 직업

      가위 수리꾼은 일반적인 장사꾼이나 공방 장인과 달랐다. 고정된 영업장이 없었고 등록된 상호나 사업자번호도 없었으며 연마 장비와 공구를 손수레에 얹어 도시 전체를 순회하며 일했다. 어느 날엔 시장 근처, 또 어떤 날엔 병원 인근에서 일을 했다. 그의 주소는 도시 전체였고, 고객은 길 위에서 만나야 했다. 그렇기에 수리꾼은 고객의 얼굴을 기억했고, 고객은 수리꾼의 손맛을 기억했다.

       

      3. 그들이 다루던 기술 –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손의 미학

      3.1 숫돌 소리로 재료를 듣다

      가위 수리꾼은 단순히 날을 세우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쇠붙이의 결을 듣는 사람이었다.

      “이건 일본산 스테인리스네요. 좀 더 무르게 갈아야겠어요.”
      “이건 탄소강이라 한 번에 안 깎이니, 물을 많이 써야 해요.”
      “이건 연마할 때 날이 많이 뜨는 스타일이라 중심 잡아야 합니다.”

      그들의 기술은 촉감, 소리, 진동을 종합적으로 인지하여 금속의 성질을 파악하고 최적의 연마 각도를 잡는 직관적 기술이었다.

      3.2 연마 기술의 핵심 – 대칭과 중심 잡기

      가위나 칼은 단순히 날이 날카로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재단용, 미용용, 공구용 가위는 "양쪽 날의 대칭, 중심축의 미세한 조정, 날 사이의 마찰력 조절" 이 3가지가 맞아야만 제대로 작동한다.

      이런 작업은 눈대중과 감각에 의존해 1mm 이하의 차이를 맞추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손끝의 감각이 없는 사람은 평생 해도 제대로 가위 하나 못 갈았다.

       

      4. 고객의 기억 – 고정 고객층과 반복 거래의 구조

      4.1 주부, 양장점, 이발소, 학교

      가위 수리꾼의 주요 고객층은 다음과 같았다:

      • 가정주부: 식칼과 주방가위
      • 재단사와 양장점: 고급 재단가위
      • 이발사: 커트용 미용가위
      • 학교: 공예실, 가위·도구 관리
      • 농촌과 공구점: 낫, 톱, 대패 등

      고객들은 그의 기술을 필요로 했고, 그는 고객의 사용 패턴을 기억했다.

      “저번보다 조금 더 무디게 해주세요. 아이가 쓰는 가위예요.”
      “이번엔 정밀하게 갈아주세요. 얇은 실크 자를 거예요.”

      이런 피드백은 단골을 만들어냈고, 단골은 곧 생계의 기반이 되었다.

      4.2 외상, 현금, 그리고 신뢰

      가위 수리꾼은 고객과의 관계를 ‘신뢰’로 유지했다. 외상을 받아가기도 하고, “이거는 내가 갈아봤자 오래 못 써요”라며 자신의 작업을 스스로 제한하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삶과 기술을 동시에 책임졌던 동네의 기술 파트너였음을 보여준다.

       

      5. 사라진 이유 – 단가와 수요, 그리고 구조의 붕괴

      5.1 싼 가위, 비싼 손기술

      1990년대 이후 중국산, 동남아산 가위가 대량 수입되면서 가위 한 자루의 가격은 연마 비용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고객은 “고쳐 쓰는 것보다 그냥 새로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가위 수리꾼은 점점 거래처를 잃어 갔다.

      5.2 기술 전수의 단절

      가위 수리 기술은 문서화된 것이 아니라 구술과 몸의 기억을 통해 전승되었다. 그러나 후계자가 없고, 길거리 수공업 자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낮았던 탓에 기술은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한 장인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쇠붙이를 다루지만, 사람들은 나를 거지나 노점상처럼 봤어요. 아들은 이 일 물려받기 싫어했죠.”

       

      6. 문화사적 의미 – 도구를 살리고, 삶을 연결하던 손

      6.1 ‘수리’란 무엇인가?

      수리는 단순히 고치는 일이 아니다. 수명과 기억, 기능과 감각을 되살리는 과정이다. 가위 수리꾼은 생산자가 아니면서 생산적이고, 유통자가 아니면서 공급자였으며, 예술가가 아니면서 아름다움의 실현자였다.

      그들은 도구와 인간의 관계를 연장시키는 기술자였으며, 그 과정 속에서 도시의 리듬, 거리의 삶, 기술의 미학을 형성했다.

      6.2 재생과 지속가능성의 실천자

      가위 수리꾼은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순환경제의 실천자, 재생 기술의 전문가, 친환경 노동자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시 쓰게 했다. 그리고 그 손끝에 담긴 것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자원의 순환과 생명의 존중이었다.

       

      사라진 일자리, 가위 수리꾼의 거리기술

      7. 결론 │ 가위 수리꾼은 사라졌지만, 거리의 기술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가위를 갈지 않는다. 닳으면 버리고, 부러지면 새로 사고, 더는 날카로움의 유지보다 편리한 소비를 선택한다. 그러나 그렇게 잃어버린 것 중에는 쇠붙이의 감각만이 아니라 손끝의 기술, 고객과의 대화, 그리고 거리의 삶이 함께 있다. 가위 수리꾼은 단순한 옛 직업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다시 복원해야 할 도시의 기술 문화, 그리고 사람과 기술, 일과 기억 사이의 관계성 그 자체였다. 언젠가 도시가 다시 작은 기술과 정직한 손을 필요로 하게 될 때, 가위 수리꾼의 이야기와 기술은 분명히 새로운 방식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술, 예전에 골목에서 봤던 거야.”